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니체 (문단 편집) ==== 진리의 해체 ==== 서양 철학의 [[플라톤]]적인 [[관념론]]에 대한 비판이다. [[이데아]], [[보편자]], [[물자체]]와 같은 개념들이 추구하는 진리의 영원성과 불멸성이 허구임을 논증한다. 니체는 [[형이상학]]자들이 '[[진리]]'에 목메다는 점에 주목하며 시작한다. 이를 놓고 그는 독특하면서도 탁월한 질문을 하나 던지는데, 우리가 왜 굳이 그렇게 간절히 진리를 추구하냐는 것이다. 니체는 이에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견될 만한 답을 내놓는다. 세상에 진리가 있어서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 스스로가 그 "진리"란 것을 상상해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놓고 인상적인 비유를 한다. >누가 여기에서 오이디푸스인가? 누가 스핑크스인가? >『선악의 저편』 즉, 흔히 우리는 스스로를 진리라는 수수께끼에 답하기 위해서 길가에 서있는 오이디푸스라고 생각해왔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애초에 그 수수께끼를 내놓은 스핑크스라는 것이다. 니체의 논리전개의 특징은 초점을 '[[주체]]'에 맞춘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이래로 서양철학은 주체와 [[객체]]를 구분한다. 주체 vs 객체의 구도에서 주체는 관찰하는 사람이고, 객체는 관찰되는 대상이다. 그리고 그 맥락에서 서양철학의 '진리'라는 것은 주체인식과 객체의 일치를 말한다. 반면에 '비진리'와 '거짓'이란 것은 둘이 일치하지 않음, 착오를 말한다. 여기에서 진리에 도달이 가능하냐는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이에 관해서 니체는 관점주의를 외친다. 즉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자연히 그 사람의 진리라는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좌우될 수밖에 없다. 니체도 결국 그러한 말을 한다. '진리'란 그 사람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믿음'에서 그들의 '지식'을, 격식을 갖추어 마침내 '진리'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선악의 저편』 니체는 형이상학자들의 논의에는 항상 '대립'(또는 [[데리다]]의 저 유명한 '[[이항대립]]')의 패턴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를 볼 때 그가 찾아낸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진리 vs 비진리(=거짓) >확실 vs 불확실 >불변 vs 유전 >보편 vs 특수 >영원 vs 순간 그런데 니체는 이러한 대립 구도에는 가치평가가 이미 깔려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소위 진리는 비진리보다 중요한 것이고, 확실성이 불확실성보다 좋은 것이고, 불변하는 게 흘러가버리는 것보다 믿음직하고, 보편적인 게 개별적인 것보다 참된 것이고, 영원한 것이 짧은 순간보다 값진 것이라는 가치평가가 이미 내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 놓고서는 확실하고 불변하고 영원하고 보편적인게 곧 진리라고 떠드니 일종의 답정너라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의 철학은 그 사람의 가치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철학의 정체가 내게는 차츰 명료해졌다. 즉 그것은...자기고백 ><선악의 저편> 또한 니체는 형이상학자들의 논리가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스토아]] 철학의 [[자연]], [[칸트]]의 [[물자체]], [[헤겔]]의 [[정신]]을 뜯어보면 절대적이고 불변의 진리가 존재한다고 이미 전제를 해놓고서는 자신들은 그것을 찾았다고 결론낸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종교적이고 '미신'인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대답이란 말인가? 설명이란 말인가? 아니 오히려 물음의 반복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선악의 저편』 이러한 형이상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가치평가, 순환논리의 원인을 니체는 '확실성'이라고 본다. 플라톤, 스토아학파, 칸트, 헤겔 모두 확실성을 원했기 때문에 불변하고, 보편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확실성'이 추구된 원인에 대해 니체는 몸철학 관점에서 답한다. '자기보존'의 욕구가 인간의 육신에 '선천적', '유전적'으로 내재되어(유전자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안정적으로 계속 살고 싶다"는 욕망이 무의식에 깔려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안정 추구 -> 불변의 진리 >계속 추구 -> 영원의 진리 로 짝지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통 서양철학이 추구한 '영원 불변의 진리'란 것은 "나는 안정적으로 계속 살고 싶다"는 욕망을 추상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질에 불과한 인간의 몸이 정신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결국 진리란 인간은 철학자 이전에 동물이라는 사실이 빚어낸 '인간적인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만 니체는 이러한 인간적인 편견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삶답게 느끼게 해주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내용은 도덕의 계보에서 중심이 되는 주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